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족 볼셰비즘 (문단 편집) == 개요 == 민족 볼셰비즘[* 구글 검색했을 때 [[https://www.google.com/search?q=%22%EB%AF%BC%EC%A1%B1+%EB%B3%BC%EC%85%B0%EB%B9%84%EC%A6%98%22&sca_esv=585579201&sxsrf=AM9HkKmFN5dXMRAHlKI0N9XCHQVPMHJfyA%3A1701084581032&ei=pX1kZZLOAdfiwAOftZrQDA&ved=0ahUKEwjStL3xieSCAxVXMXAKHZ-aBsoQ4dUDCBA&uact=5&oq=%22%EB%AF%BC%EC%A1%B1+%EB%B3%BC%EC%85%B0%EB%B9%84%EC%A6%98%22&gs_lp=Egxnd3Mtd2l6LXNlcnAiFSLrr7zsobEg67O87IWw67mE7KaYIjIEEAAYHkiMElDmBVi1EHABeACQAQCYAX-gAdkDqgEDMC40uAEDyAEA-AEBwgIKEAAYRxjWBBiwA8ICBRAAGIAE4gMEGAAgQYgGAZAGBQ&sclient=gws-wiz-serp|민족 볼셰비즘]]이 [[https://www.google.com/search?q=%22%EA%B5%AD%EB%AF%BC+%EB%B3%BC%EC%85%B0%EB%B9%84%EC%A6%98%22&sca_esv=585579201&sxsrf=AM9HkKlViZa4Kyf_7yNd79CjIf35SFMn5A%3A1701084591291&ei=r31kZauuEfHS1e8PyrayMA&ved=0ahUKEwjrwa_2ieSCAxVxafUHHUqbDAYQ4dUDCBA&uact=5&oq=%22%EA%B5%AD%EB%AF%BC+%EB%B3%BC%EC%85%B0%EB%B9%84%EC%A6%98%22&gs_lp=Egxnd3Mtd2l6LXNlcnAiFSLqta3rr7wg67O87IWw67mE7KaYIjIIECEYoAEYwwQyCBAhGKABGMMEMggQIRigARjDBDIIECEYoAEYwwRI3gpQoARY3AlwAXgBkAEAmAF6oAGlB6oBAzAuOLgBA8gBAPgBAcICChAAGEcY1gQYsAPCAgUQABiABMICBBAAGB7CAgYQABgeGA_CAgYQABgHGB7iAwQYACBBiAYBkAYG&sclient=gws-wiz-serp|국민 볼셰비즘]]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도 '민족 볼셰비즘'으로 등재된 논문이 있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12979|#]]]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처음 등장한 용어로, 패전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독일]]에서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보수혁명]]'운동의 하나였다.[* [[오토 슈트라서]]가 주창한 [[슈트라서주의]]도 여기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용어 자체는 백계 [[러시아인]]이자 좌익 [[유라시아주의]] 사상가였던 드미트리 스뱌토폴크미르스키가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미르스키 본인은 [[파시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미르스키 뿐만 아니라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등 고전적 [[유라시아주의]] 사상가들은 파시즘을 배격하는 쪽에 가까웠다.] 약칭으로 나츠볼(Nazbol)로도 불린다. 오늘날에도 [[러시아]]나 [[프랑스]], [[독일]]같은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의 'E. V. 리모노프의 다른 러시아'는 반푸틴 재야 진영에서 활동하는 군소 진영 중 하나이지만,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수면 위에서 활동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전신인 민족 볼셰비키당은 2007년 해산되었다.] 이름 그대로 [[민족주의]]에 [[사회주의]]를 결합한 사상이라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와 종종 헷갈리기도 하는데, 일단 [[소련]]에 대해 긍정적이고 [[계급]]문제에 대해 민감하다는 점, 자칭 반[[제국주의]] 성향을 띈다는 점 등에서 국가사회주의와는 구분된다.[* 제국주의가 인종적 혼혈과 문화 융합을 촉발시켜 민족적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반제국주의자를 자칭하는 것이다. [[제3의 위치]] 추종자들 중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반제국주의를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끔찍한 혼종|상당히 이상한 이념이지만]], 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1차대전 직후 독일과 러시아가 마주한 상황을 분석해 보면 된다. 당시 독일과 러시아는 각자 패전국과 공산주의 이념의 국가로서 서방 자유민주주의 세력에게 가장 비난받는 나라였다. 배상금 징발과 전쟁의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내정간섭을 당하며 휘둘리는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달리, [[소련]]은 시장 자본주의 질서를 배격하는 자립주의적인 노선을 택하며 권위주의적인 통치방식으로 불온세력을 모두 때려잡아 국가 질서를 유지했다. 흔들리는 독일과는 달리 외부의 공세에도 굳건히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는 소련은 당시 극우파들의 눈에 "서방의 질서로부터의 해방" 이라는 일종의 해결책으로 보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념상으론 공산주의와는 별 관계가 없고 공산주의자들이 보인 볼셰비즘이라는 '''방법론'''에 매혹을 느낀 것이다. 20세기 내내 민족 볼셰비즘의 이론을 발전시킨 건 장프랑수아 티리아르(Jean-Francois Thiriart) 같은 반미, 반자본주의 성향의 서구권 [[네오 파시즘|네오 파시스트]]들이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비슷한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도 벌어졌는데, 당시 이탈리아 좌파는 [[독일 사민당|독일이 그러했듯이]] 계급과 민족의 문제에서 갈등을 빚었다. 그 중 조르주 소렐의 [[민족생디칼리슴]](National syndicalism) 노선에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자 아르투로 라브리올라(Arturo Labriola)는 "프롤레타리아 민족(Proletarian nation)" 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는데, 이탈리아는 착취받는 민족에 해당하며 이탈리아에 필요한 투쟁은 내부적으로 계급투쟁을 벌이며 국제주의적 연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금권적 착취 국가에 맞서 억압받는 이탈리아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https://books.google.com/books?id=hnv0F88nLawC&q=Arturo+Labriola+adopted+Sorel%27s+theory+of+proletarian+violence&redir_esc=y#v=snippet&q=Arturo%20Labriola%20adopted%20Sorel's%20theory%20of%20proletarian%20violence&f=false]]] 다른 민족생디칼리스트 지도자 세르지오 파눈치오(Sergio Panunzio)는 폭력의 중요성에 집착했으며,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는 대중 동원과 이들을 지도할 신엘리트 계급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라브리올라는 [[협동조합주의]] 경제 이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괴상하게 뒤틀어서 혁명적 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자본주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들은 이 발전과정이 부르주아 농민 그리고 노동자들의 전국가적인 계급협조가 요구된다고 주장했으며, 프롤레타리아적 민족주의와 이탈리아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옹호했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이러한 민족적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갈등을 빚었고,[* [[https://books.google.com/books?id=hnv0F88nLawC&q=Not+all+Italian+syndicalists+became+fascists+but+most+syndicalist+leaders+were+among+the+founders+of+the+Fascist+movement+Many+even+held+key+posts+in+the+regime+of+Benito+Mussolini#v=snippet&q=Not%20all%20Italian%20syndicalists%20became%20fascists%20but%20most%20syndicalist%20leaders%20were%20among%20the%20founders%20of%20the%20Fascist%20movement%20Many%20even%20held%20key%20posts%20in%20the%20regime%20of%20Benito%20Mussolini&f=false]]] 여러 사회주의 조직들에서 탈퇴하거나 쫒겨나게 된다. 이 민족적 사회주의자들 중 알체스테 데 암브리스(Alceste De Ambris)와[* [[https://books.google.com/books?id=CRYFOJaaAisC&q=Revolutionary+Fascio+of+Internationalist+Action+Alceste+de+Ambris&redir_esc=y#v=snippet&q=Revolutionary%20Fascio%20of%20Internationalist%20Action%20Alceste%20de%20Ambris&f=false]]] 안젤로 올리비에로 올리베티(Angelo Oliviero Olivetti)는 1914년 10월, 함께 국제적 행동의 파쇼(Fasci d'Azione Internazionalista)라는 조직을 결성한다.[* 파쇼는 라틴어 [[파스케스]]에서 유래한 이탈리아 단어로, 이렇게 조직명에서 사용될때 ~단(團)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어원이 그렇다 보니 권위주의적인 어감을 가진 표현이며, 이런 단체명도 대충 의역하면 "국제적행동군단" 정도가 된다.] 다음달인 11월 5일엔 역시 전쟁의 문제로 이탈리아 사회당에서 출당 조치된 [[베니토 무솔리니]]가 혁명적 행동의 자율적 파쇼(Fasci Autonomi d'Azione Rivoluzionaria)라는 조직을 결정하자 두 조직은 합쳐지게 되어 혁명적 행동의 파쇼(Fasci d'Azione Rivoluzionaria)라는 조직이 된다.[* [[https://books.google.co.uk/books?id=hnv0F88nLawC&q=Fasci+autonomi+d%27azione+rivoluzionaria#v=snippet&q=Fasci%20autonomi%20d'azione%20rivoluzionaria&f=false]]] 이런 조직의 발전 과정에서 합류한 민족생디칼리스트인 미켈레 비앙키(Michele Bianchi)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전투 파쇼(Fasci Italiani di Combattimento)와 [[국가 파시스트당|파시스트당]]을 창설하는 것을 도왔고, [[로마 진군]]을 이끄는 파시스트 지도자 중 한 명이 된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Tm6uVwH03hAC&q=Michele+Bianchi+Unione+Italiana+del+Lavoro&redir_esc=y#v=snippet&q=Michele%20Bianchi%20Unione%20Italiana%20del%20Lavoro&f=false]]] 물론 이 안에서도 독일에서 처럼 민족주의적 기원을 지니는 "파시스트-우파와" 민족 사회주의적 기원을 지니는 "파시스트-좌파"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https://books.google.com/books?id=x_MeR06xqXAC&q=national+syndicalists+Fascist+left+Panunzio+Olivetti+right+sectors&redir_esc=y#v=snippet&q=national%20syndicalists%20Fascist%20left%20Panunzio%20Olivetti%20right%20sectors&f=false]]] 이후 민족적 사회주의자들의 일부는 [[이탈리아 파시즘|자신들이 만든 결과물]]에 경악하여 반파시스트가 되지만, 일부는 무솔리니의 앞잡이로 남게 된다. 이 점에서 민족 볼셰비즘은 초기 파시즘의 이데올기적 혼란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보수혁명론자들의 볼셰비키와 소련에 대한 지지는 그것이 보여준 사회주의로의 진보적인 힘 때문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들은 볼셰비키와 소련에게서 반서구적 반문명 지향적 힘을 발견한다. 이 보수주의 엘리트들은 독일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파괴하는 근대 자본주의적 침탈을 경멸했으며, 동시에 볼셰비키가 소련에서 보여준 영웅주의와 계획경제 체제에 열광했고 이로써 [[제3의 위치|전통적인 좌우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계급투쟁 사유재산의 폐지 같은 요소를 적대화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만 단결된 민족해방투쟁을 통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계급투쟁과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국가를 폐지하는 아나키즘적 방향을 제시했던 것과는 달리, 볼셰비즘([[레닌주의]])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을 국가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따라서 이들은 볼셰비즘에서 보수혁명론자 [[카를 슈미트]]가 주장했던 총체적 전체주의 국가의 이상향을 발견했던 것이다.[* Ernst Niekisch, "Die politik des deutschen Widerstandes," Widerstand 4(1930)] 민족 볼셰비키 한스 폰 헨티히(Hans von Hentig)는 이런 맥락에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회주의를 축복할 것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군사적이고 외정(外政)적인 이유로 사회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깊이 있고 압도적인 철갑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여야 한다.[* Hans von Hentig. Ruf zu den Waffen. 7. Aufstz zur deutschen Revolution. Louis Dupeux, Nationalbolschewismus in Deutschland. 1919~1933. Kommunistische Strategie und KKonservative Dynamik(1974 : München, 1985), 157~158] 정체성이 굉장히 모호한 이 이념은 결국 좌우로 나뉘게 되었는데, 공산주의로의 도달을 위해 민족주의를 수용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민족문화의 보전과 보수혁명을 위해 볼셰비즘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신스탈린주의나 [[좌익 내셔널리즘|좌파 민족주의]] 사상으로 분류되며 [[김일성]], [[김정일]]을 존경하거나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는 등 [[북한]]에 호의적이기도 하다.[* 이념상으로 주체사상은 흐루쇼프 노선을 비판하며 [[반수정주의]]적 입장에서 자신들이 스탈린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올바른 해석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민족 볼셰비키들은 에른스트 니키쉬(Ernst Niekisch),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 슈트라서 형제 등의 독일 [[보수혁명]]론자의 이념을 자신의 뿌리로 간주한다는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극우]] [[권위주의]]나 [[파시즘]]으로 분류되며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극우 민족주의 지도자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